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 대중문화 개방 (문단 편집) == 어록 == > 일본문화를 막음으로 해서 '''[[스트라이샌드 효과|좋은 문화는 못 들어오고 나쁜 문화만 스며들어와서]] 폭력, [[음란물|섹스]],''' 무슨 이런 범죄의 문화들이 오고 있는 것은 상당히 우려할 만한 일이다. >---- >- [[김대중]] 前 대통령, 국민들을 설득하는 연설에서. >21세기는 '''문화산업의 시대'''이며 더 이상의 문화 [[쇄국정책]]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 >- [[김대중]] 前 대통령, 한일정상기자회견에서.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두려움 없이 임하라'''. >---- >- [[김대중]] 前 대통령, 업무 보고 중에서. >'문화' 두 글자만 씌우면 아무거나 문화적으로 장식되는 양 착각하면서 진실로 아끼고 보존해야 할 전통문화는 막상 설 자리가 없다. 대를 잇지 못해 사라져가는 인간문화재를 아쉬워할 여유조차 없다. 이러한 실정을 감안하면 일본은 차라리 부러운 면을 많이 갖고 있다. '''대중문화로 돈을 몽땅 버는 사람은 돈 때문에 치켜세우고, 오랜 전통문화를 새로 가꾸는 사람은 문화적 자존심의 발양으로 우대하는 풍토'''가 그것이다. 이 기회에 우리도 그런 '이중성'을 수입했으면 싶다. 대중문화를 상품화하는 노하우를 배우고 끝끝내 자기 것을 세우고 지키려는 노력에도 더 주목했으면 한다. >---- >- [[경향신문]] 1998년 10월 16일자 [[최일남]] 칼럼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101600329106002&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8-10-16&officeId=00032&pageNo=6&printNo=16566&publishType=00010|<상품으로서의 日 대중문화>]] >1998년에 시작한 문화적 개방으로 천문학적인 이득을 본 사례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중략) 남한은 일본 식민지에서 해방된 이후 정권수립을 거치고 1998년까지 일본과 문화적 교류를 차단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이미 1950년대부터 국제적으로 존경받는 거장 영화감독들도 많이 배출해서 수준 높은 영화와 대중 예술이 전 세계 관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 1970-1980년대를 거치면서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국제적인 명성들이 한국 청년들에게도 들려왔습니다. 하지만 한국 청소년들만은 일본의 뛰어난 예술성이 돋보이는 영화와 창조성이 넘쳐나는 대중음악의 관객이 될 수 없었습니다. 한국정부가 일본 대중문화의 문을 꼭 걸어 잠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전까지 한일간 대중 문화개방에 대한 논의가 많이 있었지만 남한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은 ‘남한 국민의 문화적 정체성과 가치관에 혼란을 줄거다,’ 또는 ‘일본의 폭력물, 선정물과 같은 퇴폐 문화가 남한으로 유입될 거다,’ 남한 대중문화의 질적 저하를 초래’하고, 창의성이 저하 될 거라는 등의 걱정이 더 컸습니다. 하지만 남한 국민들의 역량과 저력에 믿음이 컸던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문화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2017년 기준으로 남한이 일본으로 수출한 대중문화 산업은 1조 9천 억 원이고, 그 반대로 일본이 남한으로 수출한 금액은 2천 3백 억 원으로 남한이 일본보다 '''8배 이상의 이득'''을 보고 있습니다. >---- >- [[자유아시아방송]] 2020년 10월 9일자 권은경 칼럼 [[https://www.rfa.org/korean/commentary/ad8cc740acbd/cu-ek-10092020064620.html|<닫힌 문을 열고>]][* 출처를 생각하면 당연하겠지만 북한의 개혁개방을 촉구한 글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